• 최종편집 2023-07-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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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 회원이었던 유일한 조선인 '에키타이 안'
자료실 12-26 16:34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 및 음악적 관점의 문제들
국시모 소개 12-18 15:09
안익태의 ‘애국가’를 꼭 불러야 하나?
국시모 소개 05-11 19:59
교육 현장에서 안익태 '애국가'의 문제
국시모 소개 12-28 00:00
‘에키타이 안(안익태)’ 만주국 건국 10주년 음악회 영상 공개
국시모 소개 08-20 00:00
국가만들기 시민모임 성명서
국시모 소개 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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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봉 05-11 21:11

    ‘국가(國歌)만들기 시민모임’ 출발을 알리는 세미나 열려

    [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등을 맞이하면서 대한민국은 친일청산이란 화두가 뜨겁게 전국을 달구었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의 ‘안익태 케이스’ 출판과 함께 오랜 시간 ‘안익태 애국가’의 친일 문제와 표절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 '국가(國歌)만들기 시민모임’은 지난 8월 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이 주최하고 씨알재단이 주관한 공청회에 이해영 교수와 한예종 김정희 교수가 참석해 안익태 애국가의 친일.친나치행각과 불가리아 군가 표절 문제를 세부적으로 밝혔다. 오랜시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온 ‘국가(國歌)만들기 시민모임’은 11월 1일 국회에서 발표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안익태 애국가를 대체할 국가(國歌)만들기 시민 운동본부를 출발시켰다. 한신대학교 교수이며 대학원장인 이해영 교수는 ‘에하라 고이치와 에키타이 안 : 졸저 <안익태 케이스> 보유(補遺)’에 대해 발표했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김수현 연구교수는 ‘새로운 국가(國家) 제정 논의의 출발점 – 항일가요 애국가 연구’에 대해,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김정희 외래교수는 ‘세상의 國歌, 우리의 國歌 - 國歌,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발표했다. 첫 발표자인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가 ‘에키타이 안’이 되어 일본인 에하라 고이치와 연결된 부분을 파헤쳤다. 만주국 건국 축하를 위해 ‘만주환상곡’을 작곡한 ‘에키타이 안’의 발걸음을 그의 독일생활과 프랑스에서 활동,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기울어가던 마지막 시기 스페인으로 도주한 흔적까지 추적하며 해방 후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에서 애국지사로 변신한 ‘에키타이 안’을 고발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김수현 연구교수는 국가(國歌)라 부르지 않고 애국가(愛國歌)라고 부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며 법으로 제정된 국가(國歌)가 한국에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수현 교수는 가사문제와 작자미상 등 안익태 애국가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앞선 연구에서 다뤄진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문제가 1964년 5월 19일 ~ 26일 사이 열린 제3회 서울국제음악회에서 불가리아 출신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에 의해 이미 지적됐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김수현 교수는 지난 70여년간 안익태 애국가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된 가운데 새로운 애국가를 지정하려고 한다면 역사적 맥락, 즉 항일운동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애국가의 역사적 배경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가리아 출신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가 지적했던 불가리아 군가를 표절했다는 안익태 애국가의 곡 전체를 분석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정희 외래교수는 불가리아 군가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와 안익태 애국가를 1:1로 악보비교를 했다. 김정희 교수의 악보비교분석은 일반인들도 한 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국가(國歌)만들기 시민모임’에서도 김정희 교수의 악보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행각 뿐만아니라, 표절이라는 부분에 또 하나의 초점을 맞춰 안익태 애국가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애국가, 더 나아가 國歌로 자격을 상실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날 행사는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연구회'(대표의원 인재근, 강창일)가 주최했으며, 소속 의원으로 소병훈, 오영훈 의원이 연구의원을 맡고 있으며, 정회원으로 신경민, 심재권, 유승희, 유은혜, 이인영, 이해찬, 장정숙, 주승용, 추미애 의원등이 있으며, 준회원으로 권미혁, 기동민, 김영진, 김용태, 김철민, 박완주, 박홍근, 우원식, 윤관석, 윤후덕, 전혜숙, 정동영, 홍익표, 황희 의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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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 공청회,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는 안민석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주최하고 문화재단 씨알이 주관하는 ‘긴급 공청회,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이 여는 말씀으로 ‘친일행위의 성격과 범주’란 주제로 발언하고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가 발제를 맡아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에 대한 행위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해영 교수는 “지금까지는 안익태의 친일행위와 친나치행위, 그리고 안익태의 애국가가 반애국가적인 것을 몰랐기 때문에 불렀다고 하지만, 이제 알고 난 후에도 계속 부를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해영 교수는 그의 저서 ‘안익태 케이스’에 상세하게 안익태의 친일행각과 친나치행각을 독일연방문서보관서(Bunderarchin)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지난 2000년경부터 안익태의 반애국적 행위가 밝혀지는 가운데 안익태가 숨겨왔던 친일행각이 속속드러나고 있다. 문화기획가 구자우 얼룩소 대표는 “1955년 한국을 방문한 안익태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한국환상곡’ 악보를 제공하며 일제강점기와 독일제국시절 자신이 애국가가 포함된 한국환상곡을 계속 연주했다고 속였지만, 독일 예술가들과 자료들에 의해 허위로 밝혀졌다”고 안익태의 친일행각과 자신의 업적을 애국자로 포장해 홍보한 사실을 고발했다. 특히 지난 2006년 이후 송병욱, 전정임, 허영한, 이경분, 이해영 등 독일 현지 연구자들에 의해 안익태의 거짓말이 허위로 밝혀지면서 그의 친일 및 친나치 행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정희 외래교수는 “안익태는 표절을 넘어 자기표절까지 한 사람이다. 애국가의 상당부분이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로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했다”고 밝히며 애국가와 오! 도브로잔스키 크라이 악보를 비교하며 안익태의 표절을 증명하며 설명했다. 김정희 교수는 “특히 대중가요에서 조금만 비슷한 멜로디가 나와도 표절시비에 휘말리는데, 다른 노래도 아닌 애국가가 50% 이상이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계속 안익태의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정희 교수는 “대부분 국가는 해당국가의 민족적 정서와 리듬을 모티브로 해 애국가 및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안익태의 애국가는 불가리아 민요인 ‘오! 도브로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했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의 정서와 전혀 맞지 않다”며 중국과 일본의 국가와 비교해 설명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인경화 선생은 “우리 어릴 때 암송하던 국민교육헌장도 사라졌고, 국기 하강식도 사라졌다. 그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었고,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라졌다.”고 언급하며, “변절자가 작곡한 애국가를 우리 아이들에게 계속 가르치고 부르게 해야 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씨도 “애국가는 200여개 이상 발굴되어 있다. 애국가를 꼭 애국자가 만들 필요는 없지만, 반애국자, 반민족행위자가 만들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며, 친일 및 친나치 행위자인 안익태의 애국가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부영 전 국회의원(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우리 세대는 알든 모르든 안익태 곡조를 불러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우리 아이들에게 부르게 해야 하는가?”라며, “현재 수출규제 문제가 발생한 일본 아베 수상은 ‘일본회의’ 소속인데, 이는 야마구치갱에서 출발했으며, 이들은 정한론을 펼쳤던 침략주의자였음을 지적했다. 특히 정한론을 주장했던 야마구치갱들이 대부분 만주국 출신들이며, 안익태는 만주국을 찬양하는 만주국환상곡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사람이다”라고 지적했다. 남겨진 과제 : 토론회 참가자들의 질의 응답속에서 1. 오는 8.15광복절에 애국가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2. 안익태의 애국가를 제외하고 어떤 애국가를 불러야 하나? 3. 우리정서에 맞는 애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론의 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4. 안익태 애국가를 부르지 않도록 이슈와 대중화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

    안익태의 ‘애국가’를 꼭 불러야 하나?

    [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애국가(愛國歌)의 뜻(意味)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를 말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고난의 역사를 이겨내고 앞으로 함께 나가자는 뜻을 내포한 노래, 과거의 찬란한 역사와 영광, 그리고 현재의 자긍심을 담은 노래 등 다양한 노래들이 애국가로 불릴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애국가는 안익태의 애국가 외에는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 이승만-박정희 정권출범과 함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임을 위한 행진곡’, 윤도현의 아리랑‘, 아, 대한민국’ 등 수 많은 노래가 애국가로 불릴 수 있다. 대한민국은 법률로 수도(首都)와 국가(國歌)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 기능을 다하고 있지만,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고 정하지 않고 있으며, 안익태의 애국가 역시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로 한다’란 결정을 하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안익태는 친일행각에 히틀러 치하의 독일제국에서 나찌의 선전도구로 또는 일제의 선전도구로 활용된 음악가다. 각종 자료를 통해 안익태는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저질렀고, 나찌 치하의 독일에서 히틀런 편에 서서 음악활동을 하고 돈을 받은 사람이다. 위키백과에서 안익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안익태(安益泰, 스페인어: Eak-tai Ahn, 1906년 12월 5일 ~ 1965년 9월 16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스페인 작곡가, 첼리스트, 트럼페터,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이다.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1945년 8.15 조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서울의 숭실중학교와 숭실고등학교에서 각각 명예 졸업장을 수여받기도 한 그는 대한민국의 국가(國歌)인 애국가를 작곡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한국환상곡이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다.” 안익태 케이스의 저자 이해영 교수(한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국제관계학부)는 오랜 시간 안익태와 그가 작곡한 애국가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6월 24일 가평 ‘포럼 1939:음담패설’에서 이해영 교수와 안익태기념재단 김형석 연구위원장의 찬반논쟁이 있었다.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의 친일행각과 친나찌행각 및 1942년 9월 18일 연주된 만주국환상곡이 일제의 꼭두각시 정권인 만주국 10년을 찬양하는 내용이었으며, 이후 80년대 ‘안익태추모사업회’에서 만주국 찬양 부분에 ‘나의 사랑 한반도’로 변경한 사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김형석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은 안익태 애국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안익태가 음악가로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으며 독일제국시대였는데,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안익태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기였다고 주장했다. 김형석 연구위원장의 이 같은 인식에 대해 취재기자는 “일제 강점기였고 독일 제국시대였다고 하지만, 한반도 내에서도 조국 독립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일제가 세운 만주국 안에서도 항일독립투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그런데 왜 안익태는 친일을 선택했는가?”라고 질문했지만, 김형석 연구위원장은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토론에서 이해영 교수는 “대한민국 애국가로 법률로 공식 지정된 곡은 없다. 애국가는 대통령령으로 제정되어 법률상 근거가 없고, 대통령령에도 ‘애국가를 부른다’라고 되어 있지, 누구의 애국가를 부르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사실 확인을 하며, “대통령령은 공무원들은 지킬 의무가 있지만, 국민들은 지킬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성문법의 국가이며, 관습법을 지키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의 애국가를 애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형석 연구위원장은 “서울을 대한민국 수도로 하는 것도 관습법 아닌가?”란 주장으로 안익태의 애국가가 대한민국 공식 애국가로 문제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토론은 격한 논쟁으로 번졌다. 김형석 연구위원장은 안익태 애국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방적인 이야기를 이어갔고,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 기념재단에서는 안익태의 친일부역행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맞섰다. ‘애국가, 대한민국의 국가로서 정당한가?’ 토론회는 사실 안익태기념재단에서 회심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 안익태의 친일행각과 친나찌행각을 더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자리로 안익태의 애국가를 국가로 부를 수 없다는 당위성을 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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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독일 회원이었던 유일한 조선인 '에키타이 안'

    [에키타이안=안익태] 에키타이 안은 조선출신의 유일한 나치독일의 <제국음악협회> 회원이었다. 전 사회를 완벽하게, 전일적으로 조직화했던 나치독일에서 이 협회는 말하자면 음악분야의 나치 선전일꾼들의 조직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아래 사진은 음악학자 이경분이 찾아 낸 에키타이 안의 회원증 사본이다. 내용을 보면, 성명: A h n /Ekitai, 주소: Grunewald구, Gustav- Freytag- str. 15번지, 생년월일: 1911년 12월 5일, 출생지: 동경/ 일본, 국적: 일본, 직업: 지휘자 겸 작곡가, "제국영토내 근로허가(A.G.)를 부여함" 이라고 오른 쪽 하단에 적혀 있다. 여기서 에키타이 안은 자신의 출생지를 평양이 아니라 동경이라고 명백히 허위로 기재하고 있다. 그리고 출생년도도 1906년인데 1911년이라고 되어 있다. 특히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사각 스탬프안의 내용이다. 그대로 옮기면, Nachteilige Notierungen in politischer Hinsicht liegen nicht vor.(정치적 관점에서 흠결이 될 만한 기재 사항 없음)Reichssicherheitshauptamt 4 C Id (제국안전본부 4국 C실 I과 d)Berlin, den 24 Juli 1943 (1943년 7월 24일 베를린)줄여서 흔히 RSHA라 불리는 제국안전본부에는 모두 6개의 국이 있는 데 <제4국>이 바로 그 유명한 게슈타포(Gestapo, 국가비밀경찰)다. 제4국 곧 게쉬타포내에는 다시 A(저항세력), B(세계관등 사상검열), C(기록관리), D (점령지), E (방첩), P(외사업무)등 6개의 실이 있다. 그중 4국 C실 1과는 심사등 기본적인 기록관리, 일종의 존안카드를 관리한다고 보면 되겠다.그리고 '정치적 관점에서 흠결이 될 만한 사항 없음'은 게쉬타포가 해당 인물에 대한 신원조회를 하고 회신을 할 때 관용적으로 흔히 사용하던 문구다. 쉽게 말해 에키타이 안의 사상등 신원은 게쉬타포가 보더라도 별 하자가 없다는 말로 보면 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에키타이 안의 주소를 보자. 그뤼네발트는 베를린 서쪽의 호숫가 고급주택가다. 나도 베를린 있을 때 좀 가볼 라 하다가 너무 비싸 꿈도 못꾼 구역이다. 그 중 구스타프 프라이탁가는 바로 호수에 면해 있는 주택가다. 음악학자 송병욱이 밝혀 냇듯이 이 집은 일본외교관 이하라 고이치가 거주하던 집이자 사무공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한 때 애국가를 작곡할 정도로 '불령선인'이었던 안익태, 이제 일본대사관이 확실하게 신원을 보장해 주는 그래서 게쉬타포조차도 정치적 하자가 없다고 판정해 준 그런 '동경'출신 일본인으로 완벽 변신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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